임상의학 칼럼_0. 시작하며
바이탈충
조회 432
25.06.27
간단히 말하면 "망치를 써야 될 때는 망치를, 도끼를 써야할 때는 도끼를 꺼낼 수 있게"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문제는 "도끼"가 있는 줄도 모르거나, 학교/병원 환경 때문에건 고의적으로건 안 가르쳐주는 경우도 많으며,
"망치"라는 게 무엇이고 "도끼"라는 게 무엇인지 알고 싶어도 교과서를 봐서는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스스로 비판적인 질문을 날리고 찾아가며 전체적인 구조를 잡아나가는 식으로 6년을 보내는 것이 중요한데,
아무래도 최근에는 다들 무엇을 어떤 순서로 공부하면 좋을지+시험에 어떻게 나올지를 예쁘게 묶어주는 "컨텐츠"를 바탕으로 공부를 하고 오시는 분들이 많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 어쩔 줄 몰라하거나,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자료를 검토하기보다는 또 다른 컨텐츠로 "소비"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습니다.
심지어 어떤 분들은 다른 사람이 써놓은 글을 읽으면서 "이해가 되는 것 같은 황홀감"에 빠지시기도 합니다.
또 많은 분들이 임상의학 공부를 하면서 "시험 프레임" 또는 "기초과학 프레임" 에 갇혀 계시는 것 같습니다.
"시험 프레임"이란 의대 특성 상 당장 내일의 시험에서 답을 고르는 것이 단기적 생존에 중요하기 때문에 시험공부를 하는 것이 공부를 하는 것과 같다고 착각하는 경향성입니다. 국가고시의 주요 문제들은 이 경향성을 변별 포인트로 이용합니다.
"기초과학 프레임"이란 어떤 임상의학적 내용에 대한 이유를 찾고자 할 때 "과학적인 원리"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경향성입니다.
임상의학의 속성을 한 줄로 설명하라고 하면 저는 주저없이 "무자비한 실용주의"라고 하겠습니다.
즉, 임상의학은 "병에 대응하거나, 병을 관리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응용학문(좀 더 솔직하게는 방법론)"이지, 이학(理學)이 아닙니다.
임상의학에서의 이유란, 크게 세 가지(우리나라에서는 네 가지)가 있습니다.
1) 과학적 이유 : 기초과학의 논리를 일부 끌어와 그것을 토대로 설명합니다.
2) 통계적 이유 : 아무리 그럴싸한 논리라도, 통계적으로 입증되어야만 비로소 납득됩니다.
3) 이해당사자 간의 합의(=행동하는 용기, 어른들의 사정) : 가끔은 과학적 이유나 통계적 근거가 부족해도, 우선 납득되는 것으로 하고 봅니다. 특정 분과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서, 또는 이득을 늘리기 위해서 등 이유는 다양합니다.
4) 심평의학
병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과정은 기본적으로 "모델링"이지, 어떤 엄밀한 원리나 법칙을 통한 연역이 아닙니다.
애초에 인간이 자연현상을 이해하는 방식 자체가 모델링으로, 물리학이나 화학 등 다른 이과 과목에서도 이것은 똑같습니다.
(그저 모델링이 얼마나 견고하냐의 차이입니다)
이것을 인지하지 못하면 사실상 "이과의 탈을 쓴 문과"가 됩니다.
cf. 기초의학과 임상의학의 관계를 좀 제대로 바로잡는 것들은, 나중에 별도의 칼럼에 남겨보겠습니다.
다른 이과 과목들과 의학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임상의학의 경우 "교과서를 읽어도 이러한 구조들에 대한 이해가 가능한 방식으로 쓰여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KMLE는 상당히 모순적이고, 왜곡된 시험입니다.
제1목적은 누가 뭐래도 일차의료현장에서 기능할 수 있는 의사를 선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여태까지 대부분의 KMLE를 통과한 의사들이 대학병원에서 수련을 시작하는 경향이 굳어져 있었기에, KMLE는 삼차의료현장에서 기능할 수 있는 의사를 만들어내는 목적 또한 동시에 지니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한국의 망가진 의료전달체계가 반영되면서 KMLE의 구성은 더욱 난잡해졌습니다.
전반적으로 KMLE의 양상은:
(1) 말이 주저리주저리 엄청나게 많습니다.
이것은 일차의료현장의 특성을 반영하는 동시에,
한국의 실정 상 대부분의 삼차병원이 일차진료도 겸하기에 "말로써의 노이즈"와 "검사결과로써의 노이즈"가 잔뜩 들어있는 형태를 취합니다. (이걸 그럴싸한 표현으로 "감별진단의 역량을 기른다고 합니다")
(2) 전문가 수준의 assess 능력을 요구합니다.
그 어느 나라의 시험보다 고차원적인 내용을 묻거나, 세부적인 상황판단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한국의 왜곡된 의료체계 속에서 탄생한 "전문가"가 문제를 출제하기 때문에, "전문가" 본인 조차도 부적절한 문제를 낼 때도 있습니다. (좀 에둘러 표현하면 뭐가 한국식 에비던스고 뭐가 진짜 에비던스인지 구분을 못하고 문제를 낼 때도 종종 있습니다.)
공식적인 개념서를 내놓는 입장에서는,
(1) 안 그래도 균형을 잃은 시험을
(2) 왜곡되고 부실한 교육 현장에서 자란 의대생들이 준비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하는데
(3) 그 의대생들조차 역량이 천차만별이며,
(4) 집필진조차 때에 따라 똑같이 부실한 교육 현장에서 배출된 이들입니다.
그래서 조금만 엇나가도 누군가에게 최고의 개념서가 되는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최악의 개념서가 되버리고 맙니다.
따라서 최대한 중립적으로 서술할 수 밖에 없는 것이 공식적인 집필진의 입장입니다.
하지만 시험은 점점 비합리적으로 변해감에 따라, 변별당하지 않으려면 출제자와 같거나 그 이상의 시야를 가지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1등급을 가장 확실하고 안전하게 받는 방법은 역설적으로 2등급을 받을 확률을 100%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를 위해서는 일정 범위(또는 분과)의 문제를 틀릴 확률을 0%로 만드는 것이 유리합니다.
이왕이면 범위가 클수록, 서로 연관성이 강할수록 확률이 올라가기에 바이탈(내과/외과/산과)에서 틀릴 확률을 0%로 만드는 전략이 가장 안전하다고 봅니다.
2등급을 100%로 따내는 것은 1등급을 준비하기 위한 견고한 기반이 됩니다.
행간에 숨은 의미에 주목하자면, 막연하게 1등급에 도전하기 위해 무리하게 안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시험공부만 한다면(즉, 암기만 하거나 문제의 근거를 이리저리 끼워맞춰보고 근본적인 것들을 따져보지 않는다면) 특정 문제를 맞출 확률이 올라감과 동시에 전체적인 관점에서 다른 문제를 틀릴 확률이 같이 올라가기에 국가고시를 여러분 목표에 맞게 운영하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슬아슬한 1등급과 확실한 1등급은 다릅니다. 전자는 그 날의 운이 좋은 것이고, 후자는 계획한 대로 운영을 잘 한 것입니다.
바이탈의 영역들 문제를 틀릴 확률을 0%로 만들기 위해
하지만 공식적인 개념서가 다루기에는 부담이 있는 내용과 맥락들을
필요한 만큼 설명하되,
"기초과학 프레임"과 "시험 프레임"에 빠지지 않는 방식으로 제공함으로써
이 칼럼을 알렌의 연장선상에 놓고 보실 때
"망치를 써야 될 때는 망치를, 도끼를 써야할 때는 도끼를 꺼낼 수 있게"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단, 가독성이 좋지 않은 줄글로 내용을 전달드리는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째, 누구나 보기 좋게 정리하는 것은(안 그래도 복잡하고 미묘한 내용들을 생각하면) 많이 힘들고,
둘째, 누구나 보기 좋게 만들고 싶은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 알렌 체제를 이용하는 인원 구성이 많이 불투명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누구인지 잘 모릅니다.
- 단순히 공부에 대한 호기심이 있는 예과생부터, 이 시기를 견디는 불안감을 누르기 위해 공부를 하고자 하는 본과생, 또는
- 빈집털이를 하고 싶은 비열한 배신자,
- 어쩔 수 없는 선택을 감행한 사람들
- 등등 너무나도 다양합니다,
- 동시에 의학을 공부할 준비가 되지 않은 분들, 애초에 자격이 되지 않은 분들, 또는 반대로 미래에 좋은 의사가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이 현재 소속 의대, 병원의 열악한 환경과 구조에 의해 일방적으로 희생당할 예정인 안타까운 인재들 등이 모두 섞여 있는 것으로 압니다.
- 제 경험상, 좋은 내용을 드려도 누군가는 잘 소화하는 반면, 어설프게 하시는 분들은 그런 내용에 시간을 씀으로써 오히려 맹목적인 만족감을 느끼고 점수를 더 잃습니다.
- 양쪽 모두, 제가 원하는 결과입니다.
아무쪼록 어떤 방식으로든 제 칼럼들이 여러분을 머나먼 곳으로 데려다주는 역할을 하기를 기대해봅니다.
칼럼은 이미 거의 대부분 개인 공부 용도로 작성되어 있는 내용을 현재 알렌과 시험문제를 봐가면서 적절히 조율해 업로드하는 식으로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업로드되는 파트는 제 사정 따라 그때그때 다를 것이고, 여러 분과를 넘나들 수도 있습니다.
칼럼의 목표 자체가 해당 분과 내용과 시험문제들을 손 안에 넣고 굴릴 수 있게 하기 위함이므로, 그러기 좋은 내용들에 집중할 예정입니다. 예정대로 차근차근 푼다면 내과와 외과(저는 두 영역을 따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산부인과 정도까지 현재 계획 중에 있습니다.
댓글 쓰기
로그인 하고 의견을 남겨주세요
히포크라테스
25.06.27 (수정됨)
좋은 글 감사합니다. 공감되는 내용이 많네요…!
앞으로의 칼럼들 기대하겠습니다.
decaf
25.06.28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개인적으로 USMLE step 2도 병행하여 공부하고 있는데, 참 KMLE에 일차진료의사 양성이라는 목표와는 너무나도 괴리된 말단적인 지식을 묻는 문항이 많다는 생각을 자주 하고 있습니다. KMLE 공부 및 임상의학 전반에 관한 선생님의 탁견이 기대됩니다.
댓글 2개